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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평논 가나아트-01
1990.9.10호 가나아트 통권15호
1.여성작가 4인이 본 오늘의 여성미술

-결코 떼어 버릴 수 없는 여유라는 어휘 속에 가려진 타인들의 시선…
                                                최 효 주

여류조각계의 현실
1974년에 창립된 한국여류조각가회는 서울 문예 진흥원 ․ 미술회관 ․ 국립현대미술관 등 전국 각지에서 지난 17년 동안 해마다 정기전 및 초대전을 개최한 바 있다. 또한 1982년 주불 한국문화원 초청으로 파리전을 개최한 바 있으며 ꡑ83년 주일 한국문화원에서의 동경전, ꡑ85년 주이태리대사관 후원으로 산 마르코 화랑에서의 로마전, ꡑ90년 주 L.A한국문화원 작품전 등 4회의 해외전시를 가졌으며, 지난 ꡑ88년에는 주불 한국문화원에서 한 ․ 불조각전을 개최했다. 이것이 한국여류조각가회의 현재까지 이력이다.
ꡑ74년 20여명으로 출범한 이래 20여 년이 가까워오는 지금까지의 회원수는 120여명이 넘는다. 회장을 초대에 김정숙, 2대에 윤영자, 3대에 강은엽 씨 등이 역임하는 사이에 여성작가들 ․ 주부작가들의 모임이라는 약간의 질타를 받아들이면서, 현재 많은 회원들이 당당한 작가로서 개인전, 그룹전 등을 열면서 성장해 왔고 많은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류라고 붙혀 지는 접두사를 꼬리표처럼 달아주는 화단에서, 17년 동안의 적지 않은 세월의 흐름 속에서 꾸준히 거르지 않고 정기전을 개최하고, ꡑ83년부터는 2년 간격의 해외전과 한 ․ 불 여류작품전등을 열 수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필자는 창립회원으로서 죽 지켜봐왔기 때문에 여류조각가회의 회장 및 회원들의 노고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창립회원들의 과반수는 이 회를 떠났고, 해마다 신입회원들이 20명 가깝게 가입된다.
 수 백여 명의 화가 지망생들이 해마다 대학에서 배출되지만, 조각의 경우는 대학의 학과도 적을뿐더러 육체적인 노동이 따르기 때문에 여성의 입지조건에는 조금 벅차다는 이유로 인해 지망생들도 적은 편이다.
 사실 10여 년 전만해도 여성조각가는 손을 꼽을 만한 숫자였고, 작품 활동을 한다 해도 발표의 장도 너무나 한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때에는 지금처럼 일년에 수많은 그룹전과 개인전이 열릴 만큼 화랑의 수나 미술활동이 활발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은 화랑의 수가 많이 늘어나 전시공간이 넓어지고, 미술인구도 많아져서 1년 반 전에 화랑을 예약해야만하고, 예약해도 화랑 측에서 심사규준을 정하여 각 화랑의 성격에 맞는 작가들이 많이 있다.
 집에 부쳐오는 전람회 팸플릿이 매주 10여 통에 가깝고, 성수기 ․ 비성수기 가리지 않고 전람회는 꾸준히 열린다. 신문의 지면이 늘어난 이유도 있겠지만, 각 일간지 문화와 생활난에 실리는 전람회 안내는 서울 ․ 지방을 합쳐서 하루에 20여 건이 넘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미술활동이 서구 못지 않게 활성화된 것은 문화와 경제수준이 높아져서 예술가들을 특정한 인물들이라 느끼던 관람객들이 작가들을 자기들의 친구로서, 작품을 교양의 높은 산물로서 가까이 한 이유도 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에 관람객들의 미적 안목의 가치판단도 높아졌지만, 미술세계도 많은 변화를 가져와 기존 개념의 장벽을 깬 것이다.
 요즈음은 미술에서의 각 분야를 한정지우기 어려울 만큼 다양한 표현과 재료에 의한 작품 세계를 보여 주고 있다. 조형작가 ․ 설치작가 ․ 환경예술가라는 용어도 생겨났지만, 수년 전만해도 동양화는 동양화가, 서양화는 서양화가, 조각가는 조각가라고  확실히 구분지어 있었다. 즉, 화선지나 먹을 쓰며 낙관을 찍데 동양화과 출신이 그리면 동양화,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서양화가가 하면 서양화, 이렇듯 개념의 한정이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의 기법과 재료들이 장르의 구분 없이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각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기존의 조각대를 고집하던 작가들도 서서히 대를 버리고 바닥에 진열하기 시작했고 한가지의 재료로 작품을 완성하던 고정개념을 버리고 재료의 다양화 즉, 돌과 나무, 천, 종이, 심지어는 일상용품의 오브제를 이용하기까지 한 믹스트 미디어(혼합재료)의 작품을 보여준다.
 이러한 미술표현의 다양한 변화 속에서 여류조각가들도 어깨를 같이하고 있다. 초기의 재료의 단일성, 크기의 소형화를 뒤로 하고 믹스트 미디어의 작품과 라이트 아트까지 다양해졌고, 대형화는 물론 거대한 야외설치작품 ․ 환경조각 ․ 기념상 조각을 하는 작가들도 많이 있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여류조각가들에게 많은 정신적 ․ 육체적 고통과 감수가 뒤따랐던 것은 자명한 일이다. 다른 예술인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여성예술인들은 실로 많은 제약을 받는다. 요즈음은 “조각가”라고도 하지만, 성별을 바꾸기 전에는 결코 떼어버릴 수 없는 여류라는 어휘 속에 가려진 타인들의 시선과 여자가 하면 얼마나 할까 하는 조심스런 생각도 문제였다. 사실 세계 유명미술인들의 인명사전을 보면 여류작가들의 이름은 극소수이고 한국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조각전공 졸업생이 남자 ․ 여자 거의 비슷하게 배출되지만 활동하고 있는 작가들은 남자의 경우가 월등하다. 대개의 경우 여자졸업생들은 졸업하면 결혼 적령기를 맞아 결혼을 하고 집안에 안주한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하고 가사에 매달리게 되고 자녀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후에야 작품에 대한 열정을 되찾을 수 있다.
작품과 가정생활을 둘 다 이룰 수 없고, 또 체력적인 조건도 수반되어야 하기 때문에 작품의 내용과 크기 면에서 자연히 남성작가보다 뒤떨어질 수 밖에 없고. 이를 극복하지 못한 작가는 자연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한동안 쉬었던 작품구상도 연결이 현실로 이어지려면 본인의 노력은 물론 주위의 격려와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여류조각가회는 그들에게 격려와 정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국여류조각가회에는 원로작가 ․ 중견작가 ․ 젊은 작가들과 작품에만 전념하는 작가, 가정의 힘든 가사와 작품을 병행하는 작가, 선생을 겸하는 작가, 외국에 체류하는 작가 등 여러 유형의 작가들이 모여 정보교환과 작품토론을 하면서 서로의 작품세계를 굳건히 다지며 후배작가들에게 정신적인 지원을 아낌없이 하고 있다.
초창기에는 여류조각가들의 작품이라 약하다는 느낌을 가졌던 분들이 해를 거듭함에 따라 작품을 격찬하기도 한다. 그리고 작품 활동이 활발해져 그룹전이나 개인전을 하는 회원들의 팸플릿이 많이 보내져, 받아 볼 때는 흐뭇함을 느낀다.
여류조각가회의 회원이었고, 또 현재의 회원들 중에는 1회 이상 9회까지 개인전을 가진 작가들이 50여명이나 되고 해가 지남에 따라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첨부화일    4329_0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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